디지털 유산, 상속은 된다지만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간다
돌아가신 삼촌의 구글 계정에 접근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자산이라는 게 단순한 기록이 아닌 어쩌면 유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한국 민법 안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 내가 직접 준비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정리해봤다.
1. 삼촌이 떠난 뒤, 구글 계정은 열 수 없었다
작년 겨울, 나의 멘토였던 삼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가족들은 삼촌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발견했고, 그 안에는 삼촌이 생전에 사용하시던 구글 계정과 클라우드 자료, 암호화폐 지갑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삼촌의 계정을 열어보려고 하자,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촌의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제출하며 구글에 여러 번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단호했다. 삼촌이 생전에 직접 설정해두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계정 안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삼촌은 돌아가셨는데 본인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니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 순간에야 삼촌이 진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엔 삼촌의 계정 안에 단순한 사진 몇 장 정도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정 안에는 삼촌의 디지털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 어떤 데이터도 꺼낼 수 없었다. 삼촌 일을 겪고 나니 이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자산이라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는 생전에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2. 디지털 유산, 한국 법률엔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삼촌의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이런 문제들이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 궁금해졌다. 관련 법조문을 찾아보았지만 놀랍게도 현행 한국 민법 어디에도 '디지털 자산'이나 '디지털 유산' 이라는 단어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법이 모든 걸 정리해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민법 조항을 찾아봐도 삼촌이 남긴 구글 계정이나 클라우드 자료 같은 디지털 기록은 상속 재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특히 문제는 어디까지가 재산이고, 계정 같은 것도 포함되는 건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사실이었다.
상담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치가 있는 자산은 일부 판례에서 상속이 가능했던 사례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드라이브에 남아 있던 사진이나 이메일은 중요한 기록인데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 법이 아직 이런 부분까지 준비되지 않다 보니, 남겨진 가족들은 고인의 사진이나 기록 같은 소중한 자료에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많다.
3. 상속은 가능해도 실제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디지털 자산도 상속이 된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삼촌 계정을 열려고 했을 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요즘 쓰는 대부분의 온라인 서비스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 계정을 가족에게 넘겨 주지 않는다.
구글 또한 마찬가지였다. 삼촌이 생전에 따로 설정해두지 않았다면, 아무리 우리가 가족이라 해도 안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다. 페이스북이나 애플도 비슷했다. 요청을 넣으면 계정을 없애주는 건 가능했지만, 계정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결국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삼촌이 암호화폐도 거래했다는 걸 계정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암호화폐 지갑 역시 가족이라고 해서 쉽게 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정을 열 수 없다면, 상속만 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법보다 중요한 건, 생전의 준비였다
삼촌의 일을 겪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됐다. 법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부터 해보기로 했다. 삼촌이 남긴 열 수 없는 계정들을 보면서 나도 이제는 내가 쓰는 온라인 계정들을 미리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이렇게 정리해보기로 했다.
- 지금 어떤 계정들을 쓰고 있는지 가족이 알 수 있게 정리해두기
- 중요한 계정은 비밀번호나 복구 방법도 따로 기록해두기
-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같은 기준도 미리 설정해두는 게 좋다
- 유언장에는 집이나 현금 뿐 아니라, 이메일이나 암호화폐 같은 디지털 자산도 꼭 넣어두기
- 암호화폐 지갑이 있다면, 개인키를 안전하게 전달할 방법을 마련해두기
처음엔 이런 문제는 법이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직접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텐데 그때 남겨질 가족들이 또 이런 혼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디지털 자산도 분명히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열 수 없다면 결국 남긴 의미도 없어지는 거라는 걸 이번 일을 통해 제대로 느꼈다.